본문 바로가기
조용한 창작실

<공대 공순이> 6. 학생회비

by safetymasteryu 2025. 8. 21.
반응형

 

6. 힉생회비

 

 

입학 시즌은 유난히 돈이 많이 들어갔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가난한 학생을 구제해 주는 여러 제도가 있었지만 대학은 달랐다.

 

학생회비라는 이름으로 고지서가 나눠졌고, 엠티니 과잠이니 축제니 하는 것들을 위해 따로 돈을 걷는다고 했다.

 

 

고지서에 적힌 금액은 무려 25만 원.

나는 그 돈을 낼 수도 없었고, 내고 싶지도 않았다.

 

어디에 쓰이는지도 알 수 없었고, 무엇보다 지갑이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연재와 함께 전기전자공학관에 들어서던 순간,

 

나는 걸음을 멈췄다.

 

 

정문 벽에 대문짝만 하게 붙은 종이에는 학생회비를 내지 않은 학생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200명이 넘는 신입생 중 고작 10명뿐인 명단,

 

 

 

그 가운데 내 이름이 유난히 크게 보였다. 얼굴이 달아올라 숨조차 막혔다.

 

 

 

연재의 이름은 없었다. 그는 이미 냈던 걸까.

 

 

새봄아 왜 그래?”

 

하고 묻는 연재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고개를 돌리지도 못한 채

 

연재야, 나 지금 너무 쪽팔려, 아무것도 묻지 말아줘.”라고 내뱉으며 황급히 강의실로 발을 옮겼다.

 

 

 

물리학 수업 내내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연필 끝만 허공을 긁고, 머릿속은 같은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제발 오늘은 재윤 선배 수업이 없기를제발, 제발

 

 

 

그건 오만 가지 생각이 아니라 오직 하나, 재윤 선배의 시선에서 내 이름이 벗어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책을 품에 안고 강의실 문을 나서는데, 저 멀리 키가 크고 뿔테 안경을 쓴 재윤 선배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가, 무슨 용기에서였는지 나도 모르게 선배 쪽으로 달려갔다.

 

숨이 가쁘게 차오를 만큼 빨리.

 

 

 

선배!!!!!!!! 저 음료수 좀 사주세요!” 말이 터져 나올 때조차 내 심장은 귀 옆에서 요동치듯 쿵쾅거렸다.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선배는

 

?!!!! …” 하고 얼떨떨하게 대답했고, 우리는 매점으로 향했다.

 

 

 

걸음을 옮기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정문 벽보가 떠올랐다.

 

 

손바닥만 한 종이로 그 이름들을, 내 이름을, 다 가려버리고 싶었다.

 

 

 

그때 선배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어제 메신저 보냈는데, 못 봤어?”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손끝이 떨려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말하는 순간 내 마음이 드러날까 두려워서, 결국 아무 말도 못한 채 입술을 깨물었다.

 

선배는 내 표정을 읽은 듯, 매점 다 왔다.”라며 슬쩍 화제를 바꿔주었다.

 

 

 

 

바나나우유를 건네 받으며 안도의 미소를 짓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이 먼저 움직였다.

 

 

 

선배, 학생회비 내야 돼요?” 무심한 듯한 내 질문에 선배는 웃으며 말했다.

 

 

 

 

나 아침에 공학관에서 너 이름 봤어!”

 

그 말에 심장이 또다시 덜컥 내려앉았다.

 

 

 

그런데 이내 이어진 말이 내 마음을 풀어주었다.

 

 

 

나도 안 냈어. 그거 낼 필요 없어. 어디에 쓰는지도 모르잖아. 필요할 때 그때그때 내면 돼.”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러던 찰나, 전해진 미묘한 감촉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손가락이 찌릿해 오른쪽을 보니, 선배의 손가락과 내 손가락이 맞닿아 있었다.

 

 

 

 

두근, 두근.”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그 소리가 온몸을 흔들며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눈빛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저 먼저 가볼게요!”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달려 나왔다.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고, 왜 그렇게 뛰는지도 몰랐다.

 

 

 

다만 얼굴이 불타오르고, 숨이 막히고, 가슴은 터질 듯 벅차올라서 도망치듯 달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모르게, 나도 모르게.

반응형

'조용한 창작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대 공순이> 5. 컴퓨터  (3) 2025.08.21
<공대 공순이> 4. 둘째 딸  (2) 2025.06.05
<공대 공순이> 3. 연락  (6) 2025.06.05
<공대 공순이> 2. 입학식  (1) 2025.06.05
<공대 공순이> 1. 조용한 시간  (1) 2025.06.05